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덴마크-노르웨이 왕국 (문단 편집) ===== 리보니아의 상황 ===== 본래 [[리보니아]]는 [[튜튼 기사단]]의 한 지부인 [[리보니아 기사단]]령이었지만 AD 1525년 튜튼 기사단이 해체되고 [[프로이센 공국|프로이센 공작령]]으로 재편되자 다시 분리되었다. 그리고 주변의 [[타르투|도르파트]] 주교령, [[쿠를란트]] 주교령, [[사레마 섬|외젤-비크]] 주교령, [[리가]] 대주교령과 함께 '리보니아 연방'을 형성하였으나 AD 1558년부터 루스 차르국의 [[차르]] [[이반 4세]]에게 공격을 받게 되었다. 이러한 혼란을 틈타고 [[프레데리크 2세]]는 리보니아 근처의 발트해 연안의 [[사레마 섬|외셀 섬]]을 점령했다. 그리고 AD 1559년 9월 외젤-비크 주교 요한 폰 뮌히하우젠으로부터 외젤-비크 주교령을 매입하고 자신의 동생인 홀슈타인 공작 망누스를 외젤-비크 주교로 임명해 이듬해 4월 외셀 섬의 병력을 이끌고 외젤-비크 주교령을 장악하도록 했다. 이후 AD 1560년 8월 에르메스 전투에서 리보니아 기사단이 루스 차르국에게 대패를 당했기 때문에 리보니아 기사단장 고트하르트 케틀러는 AD 1561년 아예 기사단을 해체하고 [[폴란드-리투아니아]]의 속국이 되기로 결정하였다. 이에 따라 고트하르트 케틀러는 리보니아의 서부와 남부를 '[[쿠를란트-젬갈렌|쿠를란트와 젬갈렌 공국]]'으로 재편하고 스스로 초대 공작이 되며 폴란드의 봉신이 되었다. 또한 리보니아의 동부 지역은 [[리투아니아 대공국]]에 할양되었고 리가 대주교령은 [[신성 로마 제국]]의 [[자유도시]]로 남았다. 이제 남은 리보니아 북부를 덴마크가 노리기 시작했으나 [[핀란드]]를 통해서 국경이 인접해 있던 스웨덴군이 먼저 상륙하여 차지하였다. 이로서 리보니아 북부는 스웨덴의 영토인 '[[에스토니아 공국#s-2]]'으로 재편되었고 발트해 동부를 장악하려던 덴마크의 의도가 무너졌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